때는 2020년 1월,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겪은 이야기이다.
코로나 사태가 터질지 모른 채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있던 나는 익명소통 어플인'에브리타임'을 통해 한 동아리에서 새내기 환영회(?) 겸 교내시설 설명회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학점, 통학버스, 동아리 등 궁금한 게 너무 많았던 나는 무턱대고 환영회에 참가신청을 했다.
환영회 당일.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한 선배가 종이 한장을 나눠주며 오늘 배운 내용을 잘 정리한 신입생에겐 나중에 연락해서 개인적으로 밥을 사준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대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나 수강신청 꿀팁 등을 선배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종이 뒷면에 조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대충 필기한 후 제출했다. (글씨체도 안좋고 나만 알아볼 정도로 빠르게 정리한 필기라 나는 당연히 선배가 밥을 사줄것 같지 않았고 별로 먹고 싶지도 않았다.)
이로부터 약 1주일 정도 후 정체불명의 사람에게부터 카톡이 왔다. 카톡의 내용은 자신이 환영회 날에 설명을 해준 선배라며, 필기를 너무 열심히 해 쥐서 고마우니 밥을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약속날짜를 잡았다.
약속 당일. 대학교 후문에서 선배를 만났다. 실제로 환영회 때 설명을 해주던 선배였고, 후문가에 있는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어느 학교를 지원했고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는지 지원한 전형은 뭐였는지 등을 물어봐서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동아리에서 신청한 이벤트가 당첨이 되어서 스키장과 리조트가 무료인데 선배들이랑 같이 여행을 갔다오자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교육 대학원과 스피치 대회를 준비하는데 3번 정도만 내 스피치를 듣고 피드백을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했다. 다시 만나는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처음에는 내가 내 친구들이랑 같이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선배는 극도로 사양하며 너만 들어주면 된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입학하기 전에 선배 한명 알고가면 좋지 뭐~' 라는 생각으로 모조리 오케이를 했다. 더군다나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도 않았다. 소름.
스피치 3번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해버린 나는 어쩔 수 없이 이틀정도 후에 다시 학교에 갔다. 빈 강의실에 앉아있으니 선배가 들어와 빔 프로젝터를 키며 이제 첫번째 스피치를 시작할태니 이야기를 잘 듣고 피드백을 달라고 했다. 스피치의 주제는 "현재 대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싶은지 잘 모른 채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냥 그렇게 선배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갑자기 ppt슬라이드속 이상한 공원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존경하는 목사님이 만든 공원이고, 이번에 스키장 여행을 갈 때 이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갈거다. 좋은 말씀 같이 듣고 오자. 뭐 이런 소리를 했다. 목사와 공원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
첫번째 스피치가 끝나고 선배는 고맙다며 또 밥을 사줬다. 평소 종교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던 나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얼마 전 tv에 나온 교회에서 목사가 신도를 성추행한 사건을 아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내 말을 들은 선배는 미디어 매체는 확증편향이 심하다며 화두를 바꿨다.
선배와 헤어진 후 집에 오는 길에 너무 느낌에 쎄해서 목사가 만들었다는 공원 사진을 찾기 위해 구글링을 미친듯이 했다. 종교의 이름을 찾아내고, 관련 기사를 살펴보니 신도 실종, 성추행으로 목사가 교도소에 갔다가 전자발찌를 차고 몇년전 출소했다는 내용밖에 없었다. 이때는 진짜 무서워서 소름이 돋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등골이 오싹했는데 이전부터 부모님께서 느낌이 안좋다고 말씀하셔서 선배와 어느정도 거리를 둔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차단을 박아버리면 더 큰일이 일어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번째 스피치까지만 듣자고 마음먹었다. 만나서 같이 가자는 여행에 대한 거절과 약속을 그만 잡자는 말을 할 예정이었다.
(공원의 사진을 어떻게 찾았는지, 공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무서워서 말씀을 못드리겠습니다. 위 설명을 보고 어느정도 눈치채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지만, 사진 한장이면 종교집단을 바로 알 수 있을것 같아서 궁금하신분들 양해 부탁드립니다.)
두번째 스피치를 듣기 위해 만나기로 한 날은 학교가 아닌 지하철역에서 만났는데, 밥을 같이 먹기가 너무 싫어서 속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밥을 못먹겠다고 했다. 결국 카페로 와서 우유 한잔을 시키고 두번째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이번에는 주제가 '성경 해석'에 관한 이야기었다. 추가로 스키장 예약이 꼬여 스키장과 리조트는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큰일날 뻔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카톡과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친구들은 한번 끌려가서 구해줘 한번 찍지 그랬냐는 농담을 하지만 지금도 소름돋는다. 그 선배는 진짜 학교 선배였을지, 나 말고도 다른 신입생들에게 접근한 것은 아닐지 무섭다.
이전까지 사이비 종교 이야기를 들으면 왜 속나 싶었는데 스펙타클한 경험을 한 이후에는 왜 넘어가는지 알 것 같았고 안그래도 사람을 잘 안믿었는데 더 사람을 조심스럽게 사귀는 계기가 된것 같다.
세줄요약:
한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한 선배를 알게 되어 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알고보니 그 선배는 신도실종 사건이 일어난 종교집단 신자였고, 소름이 돋아 연락처를 차단했다.
구해줘3 찍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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